[맥락과 표현] (5) 성급한 꼰대의 오류

스무살 남짓 대학생처럼 보이는 남녀 한쌍이 카페 옆 자리에서 말을 주고받는다.

    여자: “이제 그런 버릇 좀 고쳐.”
    남자: “20년을 이렇게 살았는데 어떻게 고치니?”

나는 빵 터진 웃음을 추단하느라 자리를 잠시 피했다. 자리에 돌아온 날 흘끔거리는 걸 보니 들킨 것 같다. 곰곰이 돌아보면 나 역시 성급한 꼰대의 오류로 점철된 대학생 시절을 보낸 것 같다. 문학청년 시절 끼적였던 습작 공책들을 오랜만에 펴 보니 ‘삶이란···’ 또는 ‘인간이란···’ 같은 말로 시작하여 ‘~하는 법이지’ 또는 ‘~하기 마련이다’로 끝낸 글이 무척 많았다. 느낌표는 왜 또 이리 많은가. 후배들을 향해 꼰대스러움을 마구 분출하던 복학생 시절 메모를 몇 개 옮겨 본다.

  • 삶의 목적은 ‘자유’다. 문학이 추구하는 것도 자유다. 진정한 자유를 위하여! – 1997. 1. 15.(수)
  • 인간이란 신념을 가지고 살 때 가장 인간답다. 신념을 갖고 꾸준하게 그것을 지키는 이의 아침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 1. 18.(토)
  • 人生은 언제라도 論할 수 있다. 20에도 40에도. 하지만 지금 삶을 논하여 무엇하리. – 1. 25.(토)

대단한 짜라투스트라 납셨다. 몇 번을 읽어 봐도 그때 내가 적고자 했던 실제 이야기가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 생생한 일상은 모두 날아가고 생기 잃은 추상적 인상만 남았다. 기록으로서 가치를 잃어버렸다. 성급한 꼰대의 오류를, 닥치고 내 말 들어 오류라고 불러도 되고 성급한 일반화 오류라고 불러도 된다. 1인칭 서술의 정직함을 깨닫기 전에 3인칭 서술에 맛을 들이다 보면 이렇게 성급한 꼰대의 오류에 빠지기 십상이다. ‘삶’과 ‘인생’처럼 묵직한 단어를 구사하고 싶은 욕심을 덜어내고 그 대신 그때 거기에서 일어난 일을 썼으면 어떨까. ‘인간이란···’이라고 쓴 초고 문장을 ‘나는···’으로 다듬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1997년에 내가 느꼈던 순수한 감성은 습작 노트에 더 잘 보존되었을 것이다. 느낌표에 의존하지 않고 당시에 내가 놀라워했던 사태가 무엇인지 담담하게 적었다면 그 깨달음도 고스란히 간직되었을 것이다.

꽃등심 구워 먹고 싶다고 쓰면 될 것을 ‘인간은 왜 꼭 먹어야 하는가’라고 써 버릇 하면 안 된다. 스마트폰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다고 쓰면 그만인 일을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곳’이라고 호들갑을 떨어서도 곤란하다. 사태를 보여주면 된다. 판단이나 의견보다 근거 정황이 더 중요하다. 이 순서를 착각하면 꼰대스러움이 몸밖으로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이러저러한 것을 해 보니 이러저러하더라 하고 사태를 설명해 주면 되는데 꼰대들은 꼭 이렇게 훈계질을 한다. “하지 마, 내가 다 해 봤거든? 별 거 없어.”

새끼호랑이
트위터(@en_soi) 화면 갈무리. 사진 출처: 레딧(reddit)

홈페이지에 ‘첨삭 게시판’을 운영한 적 있다. 어느날 한 대학생이 학보에 실을 원고 초고라며 검토를 요청했다. 같은 학교 학생들을 향한 염려와 배려로 가득찬 이 야심만만한 글에는 인생을 치열하고 값지게 살자는 권유와 비결이 망라돼 있었다. 청년 짜라투스트라에게 나는 이렇게 댓글로 조언했다. “훈계하거나 일반화하지 말고 자기 이야기만 적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를 하나 덧붙였다.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대강 씻고 우유를 배달하러 간다. 7시에 일본어 학원에 가서 2시간 동안 회화 공부를 한다. 수업을 모두 마치면 4시부터 밤 9시까지 세븐일레븐에서 알바를 뛴다. 끼니는 중간중간에 짬을 내어 해결한다. 10시쯤 고시원으로 돌아와 2시간 동안 다음날 수업을 예습한다. 지친 몸을 뉘면 4시 진동 알람이 울릴 때까지 죽은 듯 잠을 잔다. 꿈을 꿔 본 적은 거의 없다.”

위 예문은 〈시사매거진2580〉에 소개된 이종룡 씨의 실제 사례를 참조하여 내가 재구성한 것이다. 시계 도매업을 하다가 IMF 구제 금융 시기에 부도를 맞아 3억원이 넘는 빚을 진 이종룡 씨는 절망에 빠져 자살까지 생각한 적도 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조금씩 차근차근 빚을 줄여나가기로 결심했다. 자정에 영업이 끝나면 목욕탕 청소를 하고 1시부터 3시까지 쪽잠을 잔다. 일어나자마자 신문을 배달한다. 오전에 학원 버스 운전이 끝나면 떡 배달 트럭으로 옮겨 탄다. 이동하면서 고철이나 폐지를 주워 짐칸에 실어 둔다. 배달이 끝나면 공장에 가서 일을 하다가 밤에 장거리 떡 배달을 나간다. 목욕탕에 돌아오면 자정이 되고 청소를 끝낸 후 죽은 듯 잠을 잔다.

모질고 모진 시간을 견뎌낸 이종룡 씨는 기어이 빚을 다 갚고, 마지막 100만 원을 송금한 날 은행문을 나오며 서럽게 울었다. 이제는 고인이 된 그가 보여준 삶의 태도는 꼰대스러움의 반대편에 있었다. 나는 무력감에 빠질 때마다 저 영상을 다시 보며 활기를 찾는다.

1인칭 단수형으로 쓰면서 모르는 것이 나오면 담담하게 모른다고 적는 건 보기에 단정하고 설득력도 높은 무난한 표현 방법이다. ‘우리는’처럼 1인칭 복수형으로 문장을 시작하든 2인칭이나 3인칭으로 쓰든, 그건 쓰는 사람의 선택 사항이다. 그렇지만 자기가 사용한 표현을 온전히 감당하고 자신이 뱉은 말에 다 책임을 지고자 하는 태도는 글 쓰는 이의 의무 사항이다. 얼마나 더 경험과 지혜를 쌓고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야 꼰대스러움을 심신에서 완전히 몰아낼 수 있을까?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의 마지막 문장이 그 답을 넌지시 알려주는 것 같다.

우리 눈이 생의 마지막 날을 보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삶이 행복했노라고 단언하지 마라. 삶의 저편으로 건너가 고통에서 풀려날 때까지는.

꼰대스러움은 우리 안에 산다.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만 성실한 노력과 책임 의식이 그걸 지그시 누르거나 길들이고 있을 뿐. 괴테는 《파우스트》에 이렇게 적었다.

“인간은 노력하는 동안은 방황하는 법이다.”(Es irrt der Mensch, solange er strebt)

꼰대스러움의 대표 주어인 ‘인간은’을 거침없이 구사했다. 39세이던 괴테는 이탈리아 로마 여행 중에 아래 기록을 남겼다.

《파우스트》에 대한 구상이 섰고, 이러한 작업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길 고대해 봅니다. 물론 이 작품을 지금 끝내든 십오 년 전에 끝냈든 이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동안에 아무것도 잃은 게 없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다시 실마리를 잡았다고 생각하니 특히 그러합니다. 작품의 전체적인 어조에 대해서도 적이 위안이 됩니다. 이미 새로운 장면을 하나 완성해 놓기도 했습니다. (1788년 3월 1일, 로마) 요한 볼프강 폰 괴테(지음), 홍성광(옮김), 《이탈리아 기행 2》,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252쪽

곧 탈고할 듯했던 《파우스트》의 최종본은 43년이 더 지난 82세 때, 그러니까 괴테가 생을 마치기 불과 1년 전에야 완성되는데 쓰겠다는 마음을 품은 때부터 완료까지 58년이 걸렸다.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한 인간의 삶과 지적인 방랑을 다룬 이야기를 처음 구상한 24세 괴테가 젊은 꼰대였다면, 15년 전 자기 모습을 멋쩍어하며 비로소 작품에 대한 확신에 차 있는 39세 괴테 역시 여전히 젊은 꼰대였다. 43년간 꼰대스러움과 쟁투를 벌인 82세 괴테는 깨달았던 것 같다. 꼰대스러움은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라 다만 잘 간수하고 길들여야 할 영혼의 숙명적 동반자라는 점을 말이다. ‘인간’이라는 주어와 ‘마련이다’라는 술어를 쓰고도 꼰대가 되지 않는 지혜도 아울러 터득한 것 같다.

4 Comments

  1. -_- 2014-05-08 at 22:36

    이래라 저래라 이래쓰지말라 저래 쓰라. 젊어서는 일반화 과장으로 기성세대에게 훈계하고, 나이들면 꼬장꼬장 따져서 젊은이들의 글쓰기에 훈계하고… 거참 꼰대 질량 불변의 법칙이 옳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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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나가다가 2014-06-08 at 17:54

    1인칭으로 쓰고, 구체적으로 쓰자.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해요. 사실을 충실히 적으면 그것 자체가 메시지가 되는 것이고, 그걸 메시지로 만들어 전달하려 하면 이미 생생함과 함께 감동도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멋부리지 않기, 솔직하게 쓰기가 중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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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utokredit 2017-01-25 at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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