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과 표현] (3) 일어난 일과 일어났을 법한 일

조마리아 선생이 아들 중근에게 보냈다는 편지(트위터 게시물 갈무리)
조마리아 선생이 아들 중근에게 보냈다는 편지(트위터 게시물 갈무리)

2월 14일, SNS에는 안중근 의사 이야기가 많이 올라왔다. 추모는 사형 선고일인 2월 14일이 아니라 순국일인 3월 26일에 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한 번 더 되새기는 일이 나쁠 리는 없다. 이날 이와 관련한 SNS 게시물 중에 어머니 조성녀(세례명 조마리아)가 아들 안중근에게 보냈다는 편지가 유독 많이 보였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대략 그런 내용이 담겼다. 《안중근 평전》(황재문 지음, 한겨레출판)을 읽은 직후라 어머니가 어떤 분인지 더 궁금해졌다. 그런데 다시 검토해 본 평전에는 안 의사와 어머니 사이에 오간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았고, 안중근 의사에게 보냈다는 편지 역시 아예 언급되지 않았다. 저자에게 이유를 물어 보았는데, 아래에 답변 내용을 간추렸다.


이강룡: 안중근 의사의 사형 구형 소식을 듣고 조마리아 여사가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는 편지를 보냈다는 게 사실인가요? 안중근 의사와 어머니 사이에 오갔을 대화나 서신에 관한 이야기가 평전에 나오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지요?

황재문: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에 대한 부분을 다루지 않은 것은, 편지(특히 편지 내용)에 대한 분명한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 다만 동생인 안정근과 안공근이 면회를 했을 때 어머니의 말씀을 전했다는 내용이 만주일일신문에 실려 있습니다. 신문에서 전한 내용이 사형판결을 받는다면 깨끗이 죽어서 명문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자료적인 문제도 있지만, 저는 평전에서 조마리아 여사와 관련된 부분을 특별히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빌렘 신부와의 관계 쪽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는데, 그것이 안중근이라는 인물의 사유나 활동의 폭과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연구자는 사실과 문헌을 토대로 체계를 구성해야 하므로 아무리 극적이고 흥미롭다 해도 객관성을 결여한 이야기는 다룰 수 없다. 나라를 위해 거사를 치른 한 영웅과 사형 선고 소식을 전해 들은 어머니의 의연한 편지. 문학이나 극 영화 영역에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다룰 순 있어도 역사 영역이나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근거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2013년 봄에 방영된 〈무한도전〉에 조마리아 선생의 편지가 소개됐다고 한다. 인터넷 공간에 그 이야기가 널리 회자되는 데는 〈무한도전〉의 인기가 한몫 한 것 같다. 나는 얼핏, 예능 프로그램에서 흥미를 더 유발하려고 역사적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처럼 극적으로 구성했겠거니 추측했다. 그래도 확인을 해야겠기에 해당 회차를 찾아 보았다. 그런데 내 섣부른 추측과 달리 방송 내용에 이미 조마리아 선생의 편지가 역사적 사실은 아니라는 점이 적시돼 있었다.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던 예능 프로그램의 극적 흐름이 이 대목에서 잠시 끊기는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제작진은 그걸 기꺼이 감수했다.

2013년 5월 11일 방영된 문화방송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한 장면
2013년 5월 11일 방영된 문화방송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한 장면

인터넷 공간에 회자되는 조마리아 선생의 편지는 일반 독자에게 진실을 더 잘 전달하려고 허구를 쌓아올린 문학적 사례다. 그렇지만 문헌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하여 가상의 편지에 담고자 한 어머니의 심정이 훼손되는 건 아닐 것이다. 독립 운동에 적극 동참했던 조마리아 선생이니 그 상황에서 아들에게 능히 그렇게 이야기했을 거라고 추정하는 건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일어난 일’과 ‘일어났을 법한 일’은 아주 다른 것임에도 이렇게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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