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과 표현] (2) 허구로 쌓아올린 진실

2013년이 저물 무렵 SNS에는 ‘반기문 사무총장 송년사’가 떠돌았다.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고,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라고 시작하는 이 글은 해를 넘긴 다음에는 “반기문 사무총장 신년사”라고 제목이 바뀌어 여러 온라인 공간에 퍼졌다.

2013년 12월 27일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2013년 12월 27일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반기문 사무총장은 저런 말을 한 적 없다. 얼마전 트위터에서 유엔 ‘떡밥’이 다시 출현한 걸 보았다. 2006년 유엔이 선정한 최고의 시 후보에 오른 작품으로 어느 아프리카 소년이 지었다고 한다. “나는 태어날 때도 검고 아플 때도 검고 ··· 죽을 때도 검다. 당신네 백인들은 태어날 때는 분홍빛이었다가 아플 때는 푸르스름해지고 ··· 죽을 때는 잿빛이다. 그런데 우리더러 유색 인종이라고?” 대강 이런 내용이 담겼는데, 유엔이 무슨 세계문학협회도 아니면서 그해 최고 시를 뽑는다는 점이 이상했다. 의심스러워 조금 찾아보니 어떤 흑인 가수가 1990년대에 부른 노래에 저 문구가 고스란히 나왔다. 유엔 이야기는 일단 뻥인 셈이다. 출처를 거슬러 가 보니, 흑인 인권 운동가 말콤엑스가 지은 글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더 앞서서 아메리카 원주민인 오글라라 라코타 족의 어느 추장이 한 말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정확한 출처는 찾지 못했다. ‘반기문 송년사’나 ‘유엔 선정 시’는 사실을 조각내 누더기처럼 이어붙인 거짓말이다.

이와 반대로 사실 정보가 아닌데도 진실을 전하는 표현 방법이 있다. 영화 〈스타워즈〉에는 사실이라고 부를 만한 이야기가 거의 없지만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국면을 잘 보여준다. 2019년의 암울한 지구가 배경인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기계보다 더 기계 같은 인간과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기계인 사이보그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분투하던 사이보그 무리의 우두머리는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읊조리며 작동을 멈춘다. “나는 당신네 인간들이 믿지 못할 장면을 수없이 보았어. 오리온좌의 언저리에서 작렬하는 전투선들의 포염, 탄호이저 성운 근처 암흑 속에서 번득이던 광선들도 보았지. 그러한 모든 순간들은 빗속의 눈물처럼 시간 속에서 잊혀가겠지. 죽을 시간이 됐군.” 여기에 사실 여부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우리는 이 훌륭한 작품 안으로 몰입할 수 없다. 이 영화를 연출한 리들리 스콧은 2012년에 〈프로메테우스〉를 발표했다. 〈프로메테우스〉에는 많은 CG 작업이 들어갔지만, 감독은 CG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마어마한 세트를 비롯해 배우들이 손으로 만지고 직접 보면서 연기할 수 있게끔 하려고 실제 만들 수 있는 것은 다 만들고자 노력했다.

가치있는 허구는 사실을 딛고 선다. 한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초상화처럼 정밀하게 그리거나 캐리커처처럼 인물의 특징을 살려 일부러 과장하거나 왜곡하여 전달하는 법이 있다. 역사적 인물을 그린 초상화와 풍자화가 한 점씩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인물의 특징에 관해 잘 알려주는 건 초상화가 아니라 캐리커처나 만평일 것이다. 거기에는 그 인물에 대한 동시대인의 인상이나 평가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케이프 식민지의 수상이었던 세실 로즈를 실제 생김새와 비슷하게 그린 그림과, 아프리카를 밟고 서 있는 모습을 허구로 구성한 그림
케이프 식민지의 수상이었던 세실 로즈를 실제 생김새와 비슷하게 그린 그림과,
아프리카를 밟고 서 있는 모습을 허구로 구성한 그림

화가 윌리엄 터너는 폭풍우 치는 바다의 풍경을 그리기 위해 폭풍우 치는 바다에 배를 띄우고 돛대에 자기 몸을 묶었다. 그는 본 대로 그리지 않고 느낀 대로 그렸다. 그는 허구적으로 표현한 셈이지만 그 작품에는 사실로 표현하기 어려운 진실이 깃들었을 것이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에서 프란시스코 고야가 궁정화가 시절 그린 카를로스 4세 가족 초상을 보았는데, 초상화라기보다 ‘멍청한 졸부 가족’을 묘사한 듯한 캐리커처 같았다. 가족끼리 아무리 닮았다 해도, 모든 등장인물이 쌍둥이처럼 표현된 것이 무척 우스꽝스러웠다. 고야는 이 그림에 허구를 얹었지만 그건 진실을 표현하고자 한 욕구 때문이었다.

카를로스 4세 가족 초상
카를로스 4세 가족 초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에 다녀왔는데, 피카소의 어린 시절 그림이 사실적인 정물화나 풍경화에 가까운데 비해, 나이가 들어갈수록 작품은 실제 사물이나 풍경과 멀어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노년의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처럼 그리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큐비즘과 추상으로 향한 젊은 피카소에겐 대상을 사실대로 표현할 수 있는 정물 기법이 이미 완벽히 갖추어져 있었음을 유념해야 한다.

작가 허먼 멜빌은 고래잡이에 관한 작품을 쓰기 위해 도서관도 들락거렸지만, 그에게는 그에 앞서 직접 고래잡이 배를 타고 거친 사내들과 뒤섞여 3년 가까이 바다를 누빈 현장 경험이 있었다. 작가 에밀 졸라는 광부의 삶을 소설로 쓰기 위해 갱도와 막장으로 출퇴근을 했다. 조지 오웰은 독재 정권에 맞선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의용군으로서 스페인 내전의 총알 빗발치는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동물농장》이나 《1984》를 허구적인 이야기라고 볼 수 없는 건, 그 아래에 작가의 철저한 경험 지식과 목숨을 건 실천 정신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지어낸 이야기 하나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오랜 세월을 연구와 체험에 쏟는다. 포항국제동해문학상을 받은 판사 정재민은 수상 직후 인터뷰에서 재판과 소설의 유사성에 관해 말했다. “재판과 소설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재판은 숱한 거짓들 속에서 진실을 찾아야 하고 소설은 픽션을 통해 진실을 말해야 하는 작업이다.” 방점은 마땅히 픽션(허구)이 아닌 진실에 찍혀야 할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영화 〈붉은 돼지〉의 의의는 스스로 주문을 걸어 돼지가 된 전투기 조종사의 황당무계한 허구에 있는 게 아니라,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가 되는 편이 낫지”라는 대사로 전하고자 한 그 진실에 있다. 허구는 진상을 다 파악한 자가 맥락을 잘 고려해 판단하는 신중한 선택이다. 사실 정보를 충분히 파악한 사람만이 진실을 전하기 위해 거짓을 꾸밀 자격이 있다. 《글쓰기 만보》는 마지막에 한 마디 거짓말을 하려고 아흔아홉 가지 사실을 미리 펼쳐놓는 사람이 작가라고 규정한다. 사실 99개에 거짓 1개, 그 정도 비율이면 저자에게 독자에게 모두 공정하고 유익할 것 같다.

1 Comment

  1. Pingback: ♣UN이 선정 최고의 시♣

Leave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