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사원 철학자’라 불리게 된건 한겨레신문사에서 펴내는 잡지 〈씨네21〉의 ‘이창(裏窓)’ 칼럼에 글을 쓰면서다. 그 글들은 2003년 2월 18일에서 2004년 4월 7일까지 격주로 실렸다. 그 글을 쓰게 된 것은 당시에 편집장이었던 허문영 씨 — 연재를 끝낼 무렵에는 김소희 씨가 편집장이었다 — 가 요청해서이다. 나는 그를 지금까지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어떤 경로로 그가 나를 알았는지 뭘 믿고 내게 글을 써달라고 했는지는 지금까지 알지 못한다. 궁금하기는 하나 사무치게 맺히지는 않는다. 글을 보냈을 때 마땅한 호칭이 없어서 ‘회사원·철학박사’라 붙였다. 내가 붙인건지 그가 붙인건지는 기억나지 않고, 어쨌든 두 사람 모두 동의했기 때문이겠다.

처음 보낸 글의 제목은 ‘소설’이었다. 그게 ‘이문열’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어이없기는 했지만 그냥 지나갔다. 그 다음부터는 내가 보낸 제목이 그대로 실렸다. 어이없어 한 까닭은 이렇다. 글을 청탁받았을 때 나는 내가 1년 정도 쓸 글 전체를 구상하였고, 그것에 ‘21세기 초반’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 한 글자로 된 제목의 글들 여섯 개, 두 글자로 된 제목의 글들 여섯 개, 세 글자로 된 제목의 글들 여섯 개, 영화에 관한 감상 여섯 개, 이런저런 잡글 여섯 개를 구상하였다. 그리고 이 글들 묶음 각각에 ‘나’, ‘그들’, ‘세상사’, ‘순수 관객’, ‘텍스트 읽기’라는 장(章) 제목을 붙였다. 1, 2, 3, 4, 5라는 단순한 숫자 장난이었다. 이렇게 구상하여 쓰고 글쓰기를 끝냈다. 연재는 이 순서가 아니었지만.

그 글들을 쓸 무렵 나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영동전화국 뒷쪽에 있었다. ‘숨’이라는 제목의 글 첫머리에 회사에서 건강검진한 이야기가 나온다. 오랜만에 한번 읽어본다.

얼마 전에 회사에서 건강검진을 했다. 키, 몸무게 등을 재는 신체검사말고. 이 나이 되도록 건강검진받는 게 처음있는 일이었다. 오전 업무 작파하고 건강 기록표 한 장씩 든 채 엑스레이 찍어주는 차 앞에 늘어선 동료들의 모습이 즐거워 보인다. 하긴 마다할 놈이 누가 있겠나. 일 않고 시간 보내고, 거기다 건강검진받게 해주는 안정된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뿌듯함까지 덧붙여졌을테니.

‘회사원·철학박사’는 이런저런 말들 — 회사원 맞냐, 철학박사 맞냐, 회사다니면서 철학박사 땄냐, 철학박사 따고 회사 다녔냐, 회사 그만두니 개털 되었다, 비극이다 둥둥둥 — 을 불러왔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신경 써서 그 말들을 읽어본 적이 없다. 그때는, 내가 글을 쓰면 얼마나 더 쓰겠냐 싶었고, 2004년 4월에 《책과 세계》를 출간했을 때에도 내가 또 책 쓸 일 있겠느냐 싶었고, 지금은, 회사원이었고 철학박사이니 아니라 할 것도 아니니 그렇다.

회사를 다니게 된 까닭은 2005년에 출간한 잡문집 《몸으로 하는 공부》 ‘서언’에 들어있다. 부끄러운 사연도 아니고 가슴아픈 이야기도 아니니 되풀이 할 거 없이 간단히 말하면, 내 선생님께서 퇴직하시면서 선생님께서 매학기마다 하나씩 나눠 주시던 강의를 더이상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공부하던 놈이 회사만 다니게 되니 속상하기는 했지만 그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다니고 싶어 다닌 건 아니지만 안 다닐 수는 없었던. 지금은 공부하고 강의하고 살지만 이러다가 뭔가 삐끗하면 이걸 접고 또 무슨 일을 하게될지 알 수 없다.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라면 감당해야지 하면서 지낸다. 이 모든 것이 내가 겪어야 할 삶의 계기들일테니.

학교 밖 세상은 그저 그랬다. 아니 잘 모르겠더라. 어떤 집단에 소속되었다는 느낌없이 살아왔으니 그랬을 것이다. 학교에 다닐 때에도 한국의 대학에 대해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내가 ‘학계’(學界)의 일원이었음을 자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내 선생님이 계시니 거기에 있었고, 선생님께서 퇴직하시니 떠났을 뿐이다.

나는 1962년생이니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1955-1963생)의 막내다. 학교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세상에 나와보니 선배들은… 말 않겠다. 우리 세대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지 못했다. 7,80년대에 부모가 일궈둔 땅에서 자라난 과실을 따먹으며 낭만적 유희를 즐겼을 뿐이다. 못된 짓도 그대로 따라했다. 살림이 펴고 넉넉해지면 궁해질 날을 예상하기도 하고, 앞날을 새롭게 설계하기도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2000년대의 모습은 그것의 귀결이다. 고작 1970년대를 자신들의 빛나는 황금시대로 호칭하는 꼬락서니로 전락했다.

우리 세대가 할 일은 이제 없다. 축적해 둔 것이 없으니 고갈될 것도 없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후속 세대에게 남겨줄 것이 없으니 그들이 전혀 새로운 세상에서 전혀 새로운 것을 경험하며 살아가도록 내버려두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렇지만 20대 자녀를 둔 내 또래 세대의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애들’이 쓸데없는 책 사고 씨디 사고 이상한 영화 보고 게임하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답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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