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른바 ‘교육문제’에 관심이 없다. 한국의 교육제도가 엉망이니 어떻게 바뀌어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등을 궁리하느라 머리를 써본 적이 없다. 남들이 교육에 대해 쓴 글도 잘 읽지 않는다. 습관적으로 스크랩을 하기는 하는데 그 뿐이다. 대학이 망해가고 있다, 철학과가 없어지고 있다 같은 비분강개를 읽어도 그런갑다 할 뿐이고, ‘인문학의 위기’를 주제로 쓴 글은 한 번도 진지하게 읽어본 적이 없다. 아니 뭘 새삼스럽게, 어쩌라고 그런다. 이렇게 말하면 당장 ‘공부하는 가족’에 글을 쓰고 있으면서 교육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의문이 들 것이다. 있을 법한, 당연한 의문이다. 내가 교육문제를 다루는 〈우리교육〉이라는 잡지에 글을 연재한 적도 있고, 방학이면 교사 연수에 강의를 하러 가기도 했다는 걸 아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미심쩍은 일일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말이 안 된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말이 되는 구석이 있다. 나는 ‘교육문제’에는 관심이 없지만 ‘공부’에는 관심이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내가 글을 쓰는 곳은 ‘공부하는 가족’이지 ‘교육문제를 고민하는 가족’이 아니다. 공부가 반드시 교육과 연관되는 것은 아니다. 공부는 공부고 교육은 교육이다. 내가 교육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구조로서의, 제도로서의 교육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이 문제는 무엇보다도, 하찮은 행위자인 내가 관심을 갖고 어찌 해보기에는 너무나 벅찬, 말 그대로 구조적인 문제이다. 구조도 보통 구조가 아니라 그냥 내버려두어서 저절로 무너진 다음에 새로 시작하는 게 백 번 천 번 나은 구조다. 그러니 나는 교사연수에 가서도 ‘교육문제’를 입밖에 꺼내본 적이 한번도 없다. 인문학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만 이야기했다.

나는 아이들의 교육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 지금 상황에서는 학교가 아이들의 삶을 크게 바꾸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사람인데, 학교에 있는 사람들, 즉 교사들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다. 대안학교도 학교니까, 그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 곳의 교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여긴다. 물론 어디에나 훌륭한 교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교사가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있다는 보장이 없고, 설혹 있다해도 그 훌륭함이 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내 아이가 초중고등학교 다닐 때에도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서 친구들과 큰 다툼없이 지내면서 — 친구가 안 생기면 없는듯이 다니면서 —, 교사들과 별다른 마찰없이 졸업하면 된다고 여겼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도저히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문제가 생기면 그만 다니면 된다고 마음먹으니 속편했다. 그러나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에는 깊은 관심을 가졌다. 지리, 역사, 한문, 외국어 등과 같이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야는 학교에서 어떻게 가르치든, 학교 성적이 어떻게 나오든 신경쓰지 않고, 내가 요구하는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사교육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했거나 삐까번쩍한 홈스쿨링을 했다고 짐작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사실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나는 공부에 관한 근거없는 편견이 있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내가 가진 맹신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근거를 대면서 논박해봐야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우선 초등학교 5학년이 되기 전에 동화책을 많이 읽는다고 아이가 감수성이 민감해지지는 않는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지식이 쌓이지도 않는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사이에 — 이 때가 ‘2차성징이 나타나는 시기’ 아닌가 싶기도 하다 — 아이들에게 신체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 변화는 몸뚱아리 전체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그 뒤집기에는 뇌의 구조변화도 포함된다. 그 전에 쌓아놓은 지식은 뇌의 뉴런 같은게 완전히 새로 엮이면서 다 뒤죽박죽되어 버리는 것이다. 어차피 나중에 다 망가질 회로를 미리부터 그렇게 열심히 짤 게 뭐란 말인가. 체력 튼튼하게 만들고, 뭐든 궁금해 할만한 호기심을 키워두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다. 공부는 그런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5학년부터 해도 늦지 않다. 단 이때부터 3, 4년은 좀 거세게 해야 한다. 사실을 담고 있는 책, 즉 지리와 역사에 관한 책부터 시작하여 뜨르르 읽어야 한다. 하다가 안 되면 안 하면 된다. 그거 못 버티면 그만두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 찾아야 한다. 공부는 하는 놈만 하게 되어 있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때 서울로 전학을 왔다. 한 반에 70명 가까이가 드글거리는 교실에서 뭘 배웠는지 기억이 없고, 재미도 없었다. 전라도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다보니 말수가 줄어들었고, 뺑뺑이로 들어간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도 역사과목 잘했고, 한문 열심히 했던 것 말고는 아련한 추억 따위도 없다. 각급 학교당 최소한 한 명은 있을 친구도 없다. ‘공부하면 강유원’하는 실력도 못 되었고, 졸업하고 취직하기 싫어서 대학의 철학과를 갔다. 인생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야망은 결코 가져본 적이 없다. ‘성공’ – 이것은 우리 집에서 입밖에 꺼내면 안되는 금기어이다. 군대 제대하고 3학년 복학했을 때 내 선생님 과목을 수강하면서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졸업하고 대강대강 살았을 게 틀림없다. 박사학위 받은 다음에도 어금니 서너 개가 빠질 정도로 열심히 공부한 세월도 살았지만, 생계를 위해 회사 다니느라 책 안 들여다보고 쌩으로 놀았던 세월도 꽤 된다. 이래저래 굴곡이 있었다.

공부 잘하는 건 특기에 해당한다. 공부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 그 특기도 여러 갈래다. 철학 공부는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가를 묻는 이가 더러 있는데, 내가 잘하는지를 모르겠으니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내가 답해줄 수 있는 건 이것 뿐이다: 선생님을 잘 만나야 한다는 것, 그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끊임없이 그것 자체로 즐거워야 한다는 것. 그런데 이 둘은 제도로써, 교육개혁으로써 해결되는 게 아니다.

피사보고서’라는 게 있다고 한다. ‘피사’라길래 나는 그게 기울어진 탑이 있는 이탈리아 피사에서 펴내는 문화유적 관련 보고서인줄 알았다.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진짜 그랬다. 최근에 이 보고서를 분석한 글을 읽었다. 교사이며, 교육문제에 관한 전문가가 쓴 것이다. 그걸 보니 내가 교육문제에 관심 갖지 않길 잘했다는 확신이 굳어졌다. 한국 아이들, 잠깐 펌핑(pumping)해서 근육 부풀려 사진 찍고는 곧바로 몸이 풀려버리는 방식으로 공부한다. 그들이 아무리 높은 성취를 얻어도 그건 분석자의 말대로 “공부하기 싫은 학생들 억지로 갈궈서 얻어진 성취”일 뿐이다. 이들에게는 공부가 재미없다. 교육은 되지만 공부는 안 되는 아이들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공부에는 아무런 흥미가 남아 있지 않다. 분석자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PISA가 25세를 대상으로 다시 35세를 대상으로 실시된다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공부 못하는 대한민국 어른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들은 책 살만한 돈을 버는 데도 책을 안 산다. 빌려서 읽는 것도 안 한다. 그걸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교육문제, 더 나아가 공부 안 하는 문제는 곧바로 출판의 문제와 이어진다. 도서정가제에 목매는 바보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다. 어쨌든 피사보고서까지는 아니어도 이 분석글은 한번 꼼꼼하게 읽어보는게 좋겠다. 그런 다음 교육문제 관심 끊고 당장 공부를 실천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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