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부터 지금, 2013년 초 겨울까지 도서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40주를 계속해서 하는 곳도 있고 몇 주간 특강을 하는 경우도 있으며, 한 번 특강을 하는 일도 있었다. 도서관들끼리 강의하는 사람 연락처를 공유하는 탓인지는 몰라도 여기저기서 특강을 해달라는 요청이 자주 있다. 작년부터 많아졌다. 특강 주제에 변화하는 흐름이 있다. 처음에는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을 말해달라는 요청이 많았던 반면, 작년 하반기부터는 ‘고전을 읽는 것’에 관한 요청이 빈번하다. 그렇다고해서 앞의 주제들을 다루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도 이야기를 하되, ‘꼭’ 고전에 관한 이야기를 덧붙여 달라는 것이다.

도서관마다 독서모임들이 있기 마련인데, 예전에는 그런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으나 이제는 독서모임 사람들이 참석하니까 그들이 읽을 도서목록을 알려주는 주었으면 하는 곳도 있다. 도서관마다 차이가 있다. 이른바 ‘중산층’이 많이 사는 곳이라하여 독서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며, 인구가 적다고 책읽는 사람 수도 적은 것은 아니다. 비슷한 인구를 가진 지역의 중소도시 두 군데를 놓고 비교해보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가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었다. 서울의 강남 3구는 한번도 못 가봤다. 이렇게 여기저기 다녀보기는 했으나 이것은 말 그대로 사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이므로 일반화해서 말할 수 없다. 그저 그런갑다 할 뿐이다.

그래도 몇 가지 추려보면 첫째, 사람들은 다면적인 삶의 경험과 자기정체성, 요구를 가지고 있으므로 일반화해서 접근할 수 없다. 특히 대학 교육 유무, 인문학 전공 관련 여부, 연령이나 세대 등은 독서와 관련된 적절한 판별 기준이 아니다. 속칭 명문대학 나와 나쁜 짓 많이 하는 자들 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둘째, 중·고등 학교, 대학교에서 무목적적인 책읽기가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에 ‘그냥 읽기’에서 시작하는 인문학 공부의 길을 설명하고 익히게 하는 것이 어렵다. ‘알기 쉬운 책 몇 권 읽고 나면 어려운 책 읽을 수 있는게 아니니 그냥 읽어야 한다’고 말하면 엄청나게 좌절한다. 내게 무슨 비법이라도 들려줄 알고 왔다가 실망만 잔뜩 안고 돌아간다. 미안하기는 하나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다. 셋째, 사람들에게 책 안 읽는다고 야단치는건 그냥 편하게 내지르는 말이지 책임있는 말은 아니다. 책읽기는 지겹고 따분한 일이니 그것을 잘 할 수 있게 하려면 많은 부수적인 장치가 필요하고 사회적으로 부추기는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난할 시간에 이런 일에 뭔가를 보태는 것이 낫다. 나에게 재미있는 일이라고해서 남도 재미있는 일은 세상에 없다.

도서관에서 강연을 하고 나면 질의응답이 있다. 내가 《토지》, 《혼불》 같은 장편소설을 안 읽었다 — 못 읽었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 고 하면 왜 그러냐고 물어보는 이들도 있다. 소설은 다음을 예상할 수 없으니 읽는 것 자체가 괴롭다. 무협지는 짐작이 가니까 수월하다. 책을 읽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물어보는 이도 있다. 천국은 몰라도 연옥까지 가는 건 보장한다고 큰소리치기도 하였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이 묻는 경우에는 ‘책을 읽는 것은 팔자소관이니 일단 사주를 보시라’고 답을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답을 하다보면 끝이 없다. 자녀교육상담하는 분위기가 되어 버린다. 그래도 무책임한 듯하여 몇 가지를 말하게 된다.

내가 내놓는 대답은 앞서도 말했듯이 그저 사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가 아닌가는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히는가 아닌가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 듯하다. 나는 초등학교 다닐 때 책을 많이 안 읽은 듯하다. 책이 별로 없던 시절이기도 했다. 주변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도 없었으니 ‘형님이 읽던 세계문학전집을 숨죽이고 읽었다’는 따위의 황홀한 기억은 애초에 없다. 《소공녀》를 읽으면서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다락방에서 턱을 괴고 창문 밖의 새들과 대화하는 짓거리’가 얼마나 어이없는 짓인가, 나는 이런 짓 말아야지 했던 기억뿐이다. 내 아이도 동화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던 듯하다. 내가 집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아이가 마루에서 놀다가 ‘심심하다’고 하면 ‘인생은 원래 심심한 것’이라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때가 되면, 책이 확 다가올 때가 되면 부지런히 읽기 위해서 체력을 길러두는게 먼저 아닌가 싶다. 굳이 읽히고 싶다면 사실을 담고 있는 책, 즉 지리와 역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감각은 모든 것의 기본이다.

중고등학생에게 어떤 책을 읽힐 것인가를 물어오는 이는 거의 없다. 독서는 초등학생 때보다는 중고등학생 때 더 심하게, 많이, 체계적으로, 닥치는대로 해야 하는데 명문대학 가는 일에만 관심을 갖다보니 그게 잘 안 되고 있는 듯하다. 남의 자식이야 내 알 바 아니니 난 이래라 저래라 참견해본 적이 없다. 가끔 내게 고등학생이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면서 문의 이메일을 보내는 경우가 있는데, 내 대답은 어김없다: 담임선생님과 의논하세요.

굳이 못박아 말해두자면 세계사 전집 서너질, 각국사, 부문사, 지리책 안 읽은 자들은 아예 인문학에 발을 들여놓은 생각을 말아야 한다. 아무리 소신이 이렇다해도 독서는 팔자 소관이라 생각하기에 힘주어 강조하는 말은 없지만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은 꼭 있다. 어설프게 다이제스트판, 청소년판 고전을 읽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요약본으로 읽으면 사실은 안 읽은 것인데도 읽은 듯한 착각을 갖게 한다. 고전은 직간접적인 경험이 없다면 읽어도 아무 소용없다.

정리하면 이렇다: 어린 애들에게 고전 읽히지 마라. 어줍잖은 허세만 늘어날 뿐이다. 세계사와 지리만 읽으면 충분하다.

4 Comments

  1. 2015-01-27 at 06:11

    1. 세계사 전집 서너질, 각국사, 부문사, 지리책 안 읽은 자들은 아예 인문학에 발을 들여놓은 생각을 말아야 하는 이유가 뭐죠? 너무 편협하신거아닌가요 대충 백권은 될텐데 말씀하신책들만해도.. 오히려 각국의 쉬운 고전들에서 역사와 지리에 관심을 갖게되기가 쉬운 것 같은데

    2. 어린애들이 고전을 읽으면 허세가 늘어난다는건 무슨왈?
    공자왈맹자왈 왈왈?

    3. 공간과 시간감각이 모든것의기본이라구요?
    오히려 그 둘을 초월하는 근본적인 감정이나 가치가 기본이 되지 않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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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의정 2015-01-27 at 07:21

      1. 쉬운고전에서 흥미를 찾아주기 보다는 흥미있는 분야의 책을 소개해주고 차츰 넓혀가는게 좋지 않을까요.

      2. 내용을 이해 못하고 단지 허세를 위해 읽는 스트레스가 될수 있다는 얘기인거 같네요

      3. (2번의 근거가 될 수도 있을텐데) 근본적인 가치나 감정이 먼저라서 그것을 알기위한 사회화가 필요한건 아닐까요. 그수준의 단서를 알고 상식과 기준이 적립이 되어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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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homemag 2015-01-27 at 10:47

      반말투, “왈왈” 등 기본 예의에 어긋나는 댓글이므로 삭제 처리합니다.
      표현의 자유는 존중합니다만, 오히려 논의를 더 이상 이루어질 수 없게 하는 이런 댓글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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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진진이 2015-01-28 at 21:37

    부모님이 전집을 사시거나 읽으라고 한 적은 없던거같아요. 9-10살 쯤 옆집언니네집에서 가끔 전집 골라가지고.. 홍당무, 젊은베르테르의슬픔 같은거 읽었었어요. 뭐닞 잘 모르지만 그냥 읽었던것 같은데… 아직까지 내용은 기억이 나네요. 왜 베르테르가 죽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살면서 궁금증이 차차 풀려갔던거 같습니다. 그냥 심심하고 그래서 주변에 아무책 주워읽게 하는(환경을 조성하는)게 독서조건으로는 최선같습니다. 책 읽고싶을만큼 심심하고 여유로운 상태가 아이들에게 필요한거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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