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관계 / 초심

사이트 준비 때문에 뉴스레터가 뜸했습니다(핑계).
몇 분이 답장을 주셨는데요, 제게는 많은 도움과 깨우침을 주는 사연(?)입니다(MBC ‘여성시대’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한 두 살 먹어갈 수록 소설보다는 논픽션이 좋아져요).

제 전 직장 동료인 lavie님의 사연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 국어 선생님으로 사십대 중후반쯤 된 남자분이셨죠.
학교에서 학생들의 시와 그림을 전시하는 행사가 있었어요.
다른 아이들처럼 저도 유치한 시 한 편을 제출했지요.
전시가 끝나고 시와 그림 액자들은 아이들에게 돌려주는데 선생님은 제 것을 돌려주지 않았어요.
며칠 지나 저희 집에 찾아오셔서 제 시가 마음에 들어 사고싶다고 말씀하셨어요.
부모님과 선생님은 제 의견을 정중하게 물어봐주셨고, 저는 이게 뭔가 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선생님이 마음에 드시면 그냥 드리고싶다고 했죠.
선생님은 이 시가 어엿한 제 작품이고, 작품이 좋아서 선생님이 구매를 하고 싶다는 뜻을 찬찬히 설명하셨어요.
부모님께 제가 글에 재능이 있으니 지켜봐달라고 당부하시고 제가 나중에 글을 쓰는 일을 꼭 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전해주셨죠.
당시에 제 기억에는 꽤 큰 돈인 10만원을 주고 조악한 시 한 편을 사가셨죠.
전 부모님과 상의해 형편이 어렵던 친구에게 줬구요. (왜 그랬을까. ㅎㅎ)

요즘, ‘무슨 글을 쓰겠다고 그러나’라는 자조가 들 때 국어 선생님이 가끔 생각나요.
사실 뭐 그렇고 그런 아이의 과제물 수준이었을텐데 그 때 선생님이 보여주신 확고한 신뢰와 격려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어요.
제 의사와 결정을 존중하셨던 부모님의 방식도 고맙구요.

좋은 선생님의 영향은 평생을 가는구나라는 걸 다시 느꼈어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일 같은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부모와 선생님이 그런 도움을 줘야하는 것 같구요.

또 다른 사연입니다.

저희 팀 후배 중에 아빠가 메일 카톡으로 좋은 문구 배달해준다는 친구가 있는데 그리 달가워하지는 않더라고요. 답장도 안 하기 일쑤라고.
아빠와 유대관계가 좋지 않아서인 것 같은데요.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해도 평소에 상대(자녀든 누구든)에게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면 좋은 의도는 무시되기 싶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리고 반성했고요.

이 사연을 보내준 bondandy님은 제 학창시절 친구인데, 이걸 읽고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 아무리 좋은 도구와 방법이 있어도 서로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지 않는다면 다 소용 없다는, 사회생활하면서 절실히 느끼는 것이 부모자식 간에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은 좋은 상호작용이고 그건 시간, 참을성, 사랑 같은 요소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요즘 해요.

서천석 씨의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를 읽고 있는데요, 그런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쓴 것 같아요. 저는 이 분이 트위터로 쓴 글을 책으로 냈었고, 이번 책도 짧은 호흡들로 구성되어 있길래 깊이가 없지 않을까 우려를 했었는데, 서문을 보니 저자 본인도 그런 걱정이 있었더군요. 그런데 바쁜 와중에도 책을 읽어야하는 부모들 입장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이런 구성을 택했다고 합니다. 읽어보니 일단 팔아보자고 쓴 책은 아니고 부모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가는 이야기와 실제적인 지침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사실 뉴스레터의 내용들이 처음 사이트를 채우려고 했던 내용과는 차이가 있어요. 저는 인터넷,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자녀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과 그걸 위해서 부모가 알아야 할 것들에 집중하려고 했는데, 도구와 방법만 다루는 것이 공허한 것 같아 관련 내용들도 참고할 수밖에 없더라구요. 그러다보니 제 영역이 아닌 곳까지 자주 기웃거리게 되네요. 다만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게 제 초심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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